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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3일 수요일

가족 상실의 아픔, 함께 보듬기




이미지 출처 : 영화 '간 큰 가족'



-이해와 공감은 최상의 위로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극복하자.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상실을 경험한다. 상실의 대상은 친구, 가족, 직업, 대인관계 등 다양하다. 그에 따른 슬픔과 고통은 살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상실의 경험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가족 상실의 아픔은 피하고 싶지만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다정했던 조부모를 잃은 어린아이, 머나먼 타국으로 유학 간 자녀를 그리워하는 엄마,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이산가족, 오랜 투병 생활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 반평생을 함께한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 사고로 어린 자녀를 가슴에 묻은 부모....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영화 '간 큰 가족'



<가족 상실의 후유증>

가족 상실을 경험하게 되면 놀람, 공포,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 특히, 가족의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상실은 시간이 지나면 감소하는 자연스러운 슬픔이 아닌, 영구적인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다.

트라우마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 대참사, 재난과 같은 일반적인 인간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발생하는 후유증을 일컫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쟁이나 재난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고나 주변 사람의 죽음, 왕따와 같은 창피를 당한 경험 등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크게 세 가지 주요 증상을 보인다. 먼저,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작은 자극에도 심하게 놀란다.  잠이 들기도 어려워진다. 사건의 충격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외부에 대응하기 위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같은 사건을 반복해서 기억해내기도 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옛말처럼 사건을 기억하게 만드는 물건이나 상황을 통해서 지난 사건의 두려움과 공포를 반복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러한 증상에 시달리다 보면 현실을 꿈같이 느끼거나 아예 사건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는 경우도 있다.

아동의 40펴센트가 성인기 이전에 최소 하나 이상의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사건을 겪는다고 한다. 그러나 힘든 일을 겪는다고해서 모든 사람이 트라우마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슬픔이란 감정은 사람이 겪는 정상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을 때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가까이에서 위로해줄 주변 사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출처 : 행복한 가정 - 가족애소통

2015년 7월 14일 화요일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노르웨이 우토야 섬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총기 난사 사건.
사건 당시 난사 현장에 있던 십 대 소녀가
엄마와 긴박하게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내용입니다.

딸의 전화를 받은 엄마.
우토야 섬에 총기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전해 들은 엄마는
딸에게 괜찮다는 신호로 5분에 한 번씩
문자메시지를 보내라고 합니다.

딸은 엄마 말대로 문자메시지를 통해 현장 상황을 전했고,
엄마는 경찰의 출동과 도착 여부를 전하며 차분히 딸을 안심시킵니다.
또, 범인이 경찰복장을 하고 있으니
섣불리 나서지 말고 조심하라고도 알려줍니다.
소녀는 엄마 말을 듣고 바위 뒤에 침착하게 숨어 있다가
무사히 구출됩니다.

모녀가 2시간 가까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속에는

'엄마에게 가끔 못되게 굴었지만, 엄마를 사랑해'
'알고 있단다. 내 딸. 나도 널 정말 사랑해'

라는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도 담겨 있었습니다.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각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연결하면 'FAMILY'가 됩니다.

가족은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인 나를 사랑하는 것.

딸을 향한 애틋한 사랑이 위급한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여
딸이 무사히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게 된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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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부모님만 특히 자식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방법만 다를 뿐,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큽니다.

물론 다른 집보다 경제적으로는 조금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뒷바라지해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가족',
만든 건 부모님이지만, 지키고 사랑으로 채워 나가야 하는 것은
'가족' 모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바로 해보세요.. 멀리 계신다면 전화로요..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출처 : 따뜻한 하루

2015년 6월 28일 일요일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모두 대학 동기가 된 감동 사연







공부에 흥미를 잃고 중학교를 중퇴한 두 딸들을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은 목표를 세우고
온 가족이 대학 동기생이 된 사연입니다.


2010년 10월, 자매는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고
학교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해 자퇴를 결정하고 맙니다.
1999년부터 만성신부전증으로 혈액 투석을 받기 시작해
앞으로 10년 정도 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아버지.


딸들을 만류하지 못한 죄책감에 죽기 전 아이들에게
삶의 목표와 살아가는 법을
직접 가르쳐 주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두 딸이 공부에 흥미를 갖게 하려고,
공부를 가르치며, 몸 개그도 하고
유명 그룹의 춤도 춰주었습니다.
아픈 몸으로 자신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딸들은 공부할 동기가 서서히 부여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또한 간호사로 일하면서 하루 3교대 업무에도 불구하고
저녁이면 아이들과 동영상 강의를 듣고 함께 공부했습니다.
대학 졸업장이 있어 편입이 가능했지만,
아이들과 진도를 맞추기 위해 재입학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런 부모님의 노력과 응원에 힘이 난 딸들은 빠르게 변해갔고,
중졸 검정고시를, 같은 해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2012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입학한
두 자매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꿈이 이루어져도 우리가족은 계속 공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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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하루에도 수없이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들.
우리 아이만 유별나서 부모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아이 탓만 하지 말고,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같이 공부해주고, 같은 것을 공유해주지 않아도
자신들을 믿어주는 부모님을 발견한다면,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인생은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소중한 여행일지니
서투른 자녀 교육보다 과정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훈육을 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 키르케고르 -



       출처 : 따뜻한 하루 

2015년 5월 27일 수요일

오늘부터...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때문에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아버지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절실히 느끼며 자라게 되었습니다.

늘 그렇게 아버지의 등을 그리워하다가
오는 8월 한 아이의 아빠가 됩니다.

마흔 살,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면서 삶을 바라보는
많은 것들이 변화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하루는 아내가
"오빠는 무인도에 꼭 하나를 가지고 간다면 무엇을 가지고 갈 거야?"
라고 물어왔습니다.

무슨 심리 테스트인가?

당연히 자기를 가장 사랑하니
자기를 데려갈 거라 생각했던 아내에게
나 자신도 예상 못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음.. 자기는 안되겠다.
무인도 가면 고생하잖아.
내가 좋자고 자기를 고생시킬 순 없지.."

그러자 당황한 아내는
무인도에 가도 고생은 하지 않는다며
편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귀여운 억지를 부립니다.

"그래?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사랑하는
아내를 데려가야겠지?"

그러자 아내는 나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날, 아내는 하루 종일 제가 한 말이
귓가를 맴돌아 참 행복했다고 합니다.

내가 자기를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으로 말이죠.

우리는 연애기간 동안에도
또, 결혼한 이후에도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

전 그 이유를 모두 아내 덕분이라고 하고
아내는 모두 제 덕분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그런 것 같습니다.
상대의 행복을 보며 더불어 행복해지는..

그렇게 남편이 되어가고 아빠가 되고 있습니다.

- 따뜻한 하루 가족 홍지민 -


서로 아끼고,
예쁜 말만 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행복하게만 살아도 모자란 시간입니다.

그 짧은 인생이
다투고, 외면하며, 한숨 쉬는 시간으로 버려진다면
그보다 아까울 순 없겠지요.

따뜻한 하루가 즐겨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부터'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오늘부터라도 인생 행복하게 사는 것에만 할애해 보세요.

많은 것이 바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사랑스럽게..


# 오늘의 명언
행복은 현재와 관련되어 있다.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 앤드류 매튜스 -

출처 : 따뜻한 하루 

2015년 5월 11일 월요일

우리 엄마 본동댁








나는 개구쟁이 두 아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서로를 아끼며 단란하게 살아가고 있는 가정주부이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다정한 아빠이자,
나에게도 늘 웃음을 주는 유머감각이 있는 남편이다.
아이들은 또래 보다 제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할 줄 알고
예의가 바른 편이라 걱정이 없다.
우리 집은 그야말로 행복이 가득한 집이다.

그런데 어느 날,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다.
시골에 홀로 계신 엄마가 3일을 굶어 쓰러진 채로 발견된 것이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사일에 집안일까지 정정하게 하시던 엄마인데.
무슨 까닭인지 몰라 시골집으로 가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억척 엄마. 엄마는 그랬다.
아들 넷, 딸 넷을 혼자 몸으로 키우느라 밤낮없이 일만 했다.
일찍 남편을 떠나 보낸 후,
시골에서 품을 팔아가며 8남매를 올곧게 키워내는 것,
그것이 엄마 인생의 목표였다.
쉼 없는 노동.
그 대가로 엄마는 농사지을 땅을 소유했고
자식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가졌으며 8남매 모두 잘 성장했다.

이제 인생의 즐거움을 누려야 할 때, 엄마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그토록 강인한 정신력의 엄마에게 치매가 왔다.
자식들이 모두 떠나가고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셨던 걸까?
나는 엄마를 그냥 둘 수 없어 집으로 모시고 왔다.
엄마에게는 일곱 번째 자식이지만 그냥 내가 모시기로 했다.
너무 늦게 엄마의 고통을 알게 되어 죄스럽기만 하다.
다행히 남편은 아픈 장모님을 집으로 모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오히려 엄마를 나보다 더 살갑게 대하며 가슴으로 껴안는다.
역시 멋진 내 남편이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우리 집의 아침 풍경은 언제나 비슷하다.
아이들을 챙기고 남편도 살뜰히 챙겨 출근시키고 나면
엄마가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되어버려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엄마.
40년 전 엄마가 아기인 나에게 해준 것처럼 아기가 된 엄마를 돌본다.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화장실에 시간 맞춰 데리고 가고.
아직은 엄마가 내 이름을 불러주니 다행이다.
언젠가는 그마저도 기억에서 지워버릴 것 같아 겁이 난다.

"승애야, 지금 나가야 하는디."
"엄마, 어디 가고 싶은데?"
"송광굴에 가서 일해야 혀."
"무슨 일... 이젠 안 하셔도 돼."
"콩도 심고 밭도 갈고."

엄마에겐 땅(송광굴)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 땅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모든 것이 나왔다.
그곳에서 거둔 것들로 8남매를 먹이고 키워냈다.
땅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러니 매일 돌보러 나가고 일해야 하는데, 그 땅이 이곳엔 없다.
엄마는 창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를 보며 안절부절못한다.
그 땅에 건물이 들어서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올해 일흔일곱 살 김종례. 엄마는 '본동댁'이라고 불린다.
한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할 일이 없다는 건 평생을 노동으로 살아오신 분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그래서 평일 낮 동안 치매노인보호센터로 보내드린다.
엄마에게는 거짓말을 했다.

"엄마, 그곳에 가서 일하면 하루 7천원에서 만 원 정도 버니까,
돈 벌러 가시는 거야. 알았지?"
"그럼, 일해야지. 일해야 돈을 벌지."

당뇨, 고혈압에 관절염까지 겹쳐 한 움큼씩 약을 드셔야 하는
불편한 몸으로 엄마는 기꺼이 일하러 가신다.
엄마는 그 시간이 즐겁다.

엄마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우산댁'이라 한다.
'우산댁'은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에게는 외할머니다.
외할머니가 살아 돌아오셨다고 믿는 엄마.
엄마는 거울을 보며 외할머니 끼니를 챙겨드렸냐고 묻는다.
물론 나도 식사를 잘 챙겨드렸다고 응수한다.
엄마에게 가장 그리운 사람은 외할머니였을까?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
엄마도 언제나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 하셨을 테지.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처음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영원히 건강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내 기억 속에서 엄마는 강하고 엄한 분이었다.
그런 엄마였는데, 한순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장모님 옆에 나란히 누워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리는 남편과
사위 앞에서 수줍은 듯 입을 가리고 웃는 엄마,
그리고 자신들보다 할머니에게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두 아들에게서 힘을 얻었다.
엄마는 불청객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었고
그 변함없는 사실은 우리 가족을 더 끈끈하게 이어주었다.
 
 

 


명절이 되어 고향집으로 가는 길, 쉬지 않고 5시간을 내리 달린다.
벌교 집에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이번이 여기에서 보내는 마지막 명절이다.
엄마는 본동으로 돌아와 즐거운지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부엌에선 며느리들과 딸들이 설음식 준비로 부산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명절이면 엄마가 주방의 수장으로
호령하며 음식 준비를 도맡았는데,
이제는 멀찍이 떨어져 물끄러미 부엌을 바라보신다.
아내로 엄마로 새벽부터 밤까지 노동으로 살아온 인생.
그 고단한 인생의 끝에서 치매를 만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예전부터 남편은 명절이 끝나고 돌아갈 때면 가장 늦게 올라가자 했다.
많은 가족이 붐비다가 홀로 남으실 장모님 생각에 발길이 안 떨어진다 했다.
손수 농사지은 먹거리를 잔뜩 싸주시며 잘 지내라는 말을 연거푸 하시는
장모님의 외로운 웃음을 보기가 힘들다 했다.
혼자라는 사실 앞에서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오늘도 엄마는 나갈 문을 찾아 온 집 안을 빙빙 돈다.
콩을 심어야 할 때라고 밭에 나가봐야 한다는 엄마.
이어지는 실랑이에 엄마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릴 방법을 궁리하다가
슈퍼에 가서 흰 콩과 검은 콩을 사왔다.
한데 섞어 엄마 앞에 내려놓는다.
엄마는 흰 콩과 검은 콩을 따로 담느라 손을 부지런히 놀린다.
할 일이 생겨 집중하는 엄마.
색깔 별로 잘 고르시다가도 흰 콩이 검은 콩 그릇으로 가기도 하고
검은 콩이 흰 콩 그릇으로 가기도 하고, 끝이 없다.
콩 고르기는 엄마의 큰 일감이 되었다.



 

 올 봄 초등학교에 입학한 작은 아들은 할머니가 오신 후부터 예민해졌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할머니 존재때문에 힘든가 보다.
그래도 아이들은 할머니가 오신 후에 달라진 삶을
오히려 어른보다 잘 받아들였다.
그런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좀 더 신경 쓰지 못해 속상하지만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잘 성장하리라 믿는다.

오늘은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처음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왔을 때는 30점 중 16점이었는데,
지금은 7점으로 더 안 좋아지셨다.
첫 검사에서 이미 중증이었지만 정성으로 보살펴드리면
나아질 거라 믿었는데 현실은 내 편이 아니다.
뇌 부피가 더 작아졌고 언제 시설로 보내드려야 할지
이제는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가슴에 와서 박힌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부족한 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으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엄마와의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까?
엄마는 아직 딸을 잊지 않았다.
언젠가는 내 이름과 얼굴을 잊을 때가 올지도 모른다.
존재가 지워지는 날, 그날이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길 수 없는 싸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하지만 오래도록 할 수만 있다면 그 싸움을 계속 하고 싶다.

내 곁에 오시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엄마와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
엄마는 여전히 우리 엄마고 나는 그녀의 딸이다.
엄마와 나의 시간은 오늘도 흐른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엄마 옆에 내가 있고 내 옆에 엄마가 있기에,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기에,
우리 집은 행복이 가득한 집이다.

- MBC 휴먼다큐 사랑 10년의 기적 '지금, 사랑' 중에서 -

출처 : 따뜻한 하루 

2015년 5월 4일 월요일

엄마, 뭘 그렇게 찾아?







요 며칠 주방에만 들어가면 어머니는
뭔가를 찾아 헤매느라 분주해지십니다.

"분명 여기에 뒀는데 이상하네."

어머니가 물건이 없어지기 시작한다고 말씀한지 꽤 됐지만,
가족들은 어머니의 건망증으로 치부해버리고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없어졌다고 말씀하신 물건도 쌀, 라면, 조미료 종류이고
그 양도 적어서 사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으로 덮곤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주방에서 어머니의 한 숨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오늘은 좀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싶어 주방으로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빈 찬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순간, 자신이 어제 사서 넣어놓은
통조림 캔 몇 개를 찾아봤더니 역시나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집을 비우는
매주 수요일에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누군가가 아무도 없는 우리 집에 들어와
물건을 가져간다는 건,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사소한 부재료만 가져가지만,
앞으로 더 큰 걸 훔쳐갈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열쇠를 바꾸고 경찰서에 신고하자고 흥분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거지 도둑이야?

왜 맨날 남에 집에 들어와서 이런 거나 훔쳐 가냐고,
그게 더 기분이 나빠!"
 





그런데 어머니는 흥분한 절 말리며
오히려 좀 도둑이 들어오는 날,
기름진 음식에 잘 보이는 곳에 돈까지 놓아두고 나가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선행이 못마땅한 저는
도둑을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머니가 문화센터에 가시는 수요일.
도서관에 가겠다고 나선 후,
어머니가 나가신 걸 확인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분 후,
'달그닥' 열쇠를 따는 소리가 났습니다.
'삐그덕' 현관문이 열립니다.
전 숨죽인 채 야구 방망이 하나를 들고
주방 입구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만 비명을 지를 뻔 했습니다.

"헉."

도둑의 모습을 본 저는 그 자리에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름 아닌 시집간 누나였기 때문입니다.

"누...나!.."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힘들게 결혼하며
부모님의 가슴에 큰 대못 하나 박고 떠났던 누나가.
만삭의 몸으로 얼굴은 반쪽이 되어 친정을 몰래 찾아왔던 것입니다.

돌아누울 곳도 없는 작은 방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행색이며 그 곱던 얼굴은 초라하기 짝이 없고..
거지도둑이냐며 경찰에 신고해서 당장 붙잡자는 말에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어머니의 행동이
이제서야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출처: TV동화 행복한 세상 -


칠순이 된 자식을 아흔이 된 노모는
외출할 때마다 차조심 하라고 몇 번을 당부합니다.

언제나 자식은 부모에게 보호해줘야 하고,
아껴줘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그런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기 일쑤입니다.
관심이 부담스럽고, 더 해주지 못하는 부모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감히 당부합니다.
부모의 마음 전부를 헤아려주진 못해도,
적어도 '밥 먹었냐'는 말에 퉁명스러운 대답 말고
'응, 엄마도 아빠도 식사 하셨어요?'라는 다정한 대답 한 번 해보시라는..

그 무엇보다 기쁜 한 마디가 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자녀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행복을 느낀다.
자기 자식이 좋아하는 모습은 어머니의 기쁨이기도 하다.
- 플라톤 -

출처 : 따뜻한 하루
 
 

2015년 4월 28일 화요일

가족은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동생이 중학교 2학년이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집 근처에 학교가 있어 걸어 다녔던 저와는 달리
동생은 학교가 멀어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은 늘 엄마가 주시는 차비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차비를 들고 집을 나선 동생이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괘씸했습니다.
그래서 쫓아가 따져 물었더니
"가족의 평화를 위하여"라는 이상한 말만 하고
씩 웃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엄마는 동생에게 차비를 주었고,
그 모습을 본 저는
"엄마 차비 주지 마세요. 버스는 타지도 않아요.
우리집 생활도 빠듯한데 거짓말 하는 녀석한테 왜 차비를 줘요!"
하며 동생이 얄미워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먼 길을 걸어 다니는 동생이 안쓰러우셨는지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생에게 차비를 쥐어주며
"오늘은 꼭 버스 타고 가거라"라고 당부하시며 보냈습니다.

그 차비가 뭐라고 전 엄마한테 왜 내 얘긴 듣지도 않냐며
툴툴대기 일쑤였습니다.






며칠 후, 학교 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온 집안에 맛있는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주방으로 얼른 뛰어가 보니
놀랍게도 맛있는 불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려워 고기는커녕
끼니 챙겨 먹기도 힘든 상황이어서 더욱 기쁨은 컸습니다.

저는 얼른 들어가 고기를 한 쌈 크게 싸서 입에 넣으며
미소 가득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그러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날은 무슨 날...
네 동생이 형이랑 엄마 아빠 기운 없어 보인다고,
그 동안 모은 차비로 고기를 사왔구나"

그 먼 길을 가족이 오순도순 고기를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기뻐할 진정 가족의 평화를 위해
걷고 또 걸었다고 했습니다.

성인이 되고 불고기라도 먹는 날이면,
그 날 동생의 모습이 생각나 대견함에
눈시울이 붉어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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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그런 것 같습니다.
형이 못하면 동생이
동생이 부족하면 형이
자식에게 허물이 있으면 부모가
부모님이 연세가 들면 자식이
그렇게 서로 감싸며 평생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
가족은 그런 것 같습니다.


# 오늘의 명언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몰라.
물론 많이 싸우겠지, 하지만 항상 누군가 곁에 있잖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잖아.
- 트레이 파커 -

출처 : 따뜻한 하루
 

2015년 2월 16일 월요일

아버지의 냄새

아버지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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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버지의 그 까칠한 손이 정말 싫었다.
내 얼굴을 만질 때면 사포 같은 그 손,
냄새도 났다.

아버지 몸에서도 이상한 냄새가 났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 냄새,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때 그 냄새,
비 오기 전에 풍기는 흙냄새...
뭐라 딱히 표현할 수 없다.

난 음식점 식당보조로 일하시는
아버지가 너무 창피해서

친구들한테는 아버지가
‘요리사 주방장’이라고 거짓말했다.
소림사 주방장이
무술을 꽤나 잘한다고 믿을 때였다.

그 당시 아침이면 항상 아버지는
형과 나를 동네 점방(가게)으로 데리고 가셔서
날달걀을 한 알씩 주고 마시라고 하셨다.

그 맛은 비렸다, 엄청...

그런데 그걸 마셔야만
과자 한 봉지씩 사주셨다.

내가 좋아하던 과자는
조립식 로봇이 들어있던 과자였는데,
그 로봇을 모으는 것이
내 어린 시절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다 6년 전 아버지는 하늘로 떠나셨다.
떠나시던 그 날 비가 엄청 내렸다.

그 날 난 병원 원무과와 장례식장을 오가면서
장례 준비에 더 신경 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아버지 사망소식을 전하느라....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애도는커녕
아버지를 그리워할 겨를도 없었다.

바보 같은 놈.....

39살이 된 난, 생선을 파는 생선장수다.
내 몸에서는 언제나 생선비린내가 난다.

집에 가면 딸아이가 아빠 좀 씻으라고 타박한다.
내 몸에서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내 아버지의 그 냄새가 나는 걸까?

아들 녀석은 내가 자기 얼굴에 손대는 걸 싫어한다.
내 손이 어느새
그 까칠까칠하던 내 아버지의 손이 된 걸까?

아버지가 한없이...
때로는 정말 미친 듯이 보고 싶다.

아버지의 그 냄새를 다시 한 번만 딱,
정말 딱 한 번만 맡아봤으면 좋겠다.

아내가 묻는다.
“당신은 아침에
그 비린 날달걀이 먹고 싶어요?“라고...
그러면서 애들에게 억지로 먹이지 말라고 한다.

“계란 껍질에 병균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좋다고 쭉쭉 빨아 먹어요?
당신 이상한 사람이에요.“라고

난 웃는다.
여태껏 겨울시장 통에서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동태를 손질했다.
난 오늘도 날달걀 먹고 나온다.

또한 오늘도,
아버지의 그 냄새...
나도 생선냄새를 풍기며 일한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정말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 최승용 옮겨 정리 / 새벽편지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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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자리는...
세월이 지나서 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느끼는 존재인가 봅니다


- 이번 구정 때! 부모님 생각 많이많이 하십시오! -



출처 : 사랑밭 새벽편지

2015년 2월 15일 일요일

놀아주는 아빠

 
 
놀아주는 아빠
 
 
 

 
 
                           생각만 살짝 바꾼다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습니다.
                           아빠와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해야
                           아이들도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겐 '일 만 하는 아빠'로 남고 싶으세요?
                           휴일만큼은 '놀아주는 아빠'가 됩시다.


                           # 오늘의 명언
                          아이들은 부모를 사랑함으로써 출발하고
                          나이가 들면서 부모를 평가하며 때때로 부모를 용서하기도 한다.
                          - 오스카 와일드 -
 
출처 : 따뜻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