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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4일 화요일

엄마, 내 신발은?






일곱 살 때쯤 일일 것입니다.
어머니는 막내인 저를 유난히 저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시장에서 예쁜 운동화를 한 켤레 사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운동화를 신겨주시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껴 신으렴"

그러나 전 엄청난 개구쟁이였기에 
아무리 튼튼한 신발이라도 금발 닳아 구멍이 나버리곤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아껴 신으란 말씀을
처음 하시며 사준 신발이기에 나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 가구점을 친구들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가구점 앞에는 오래된 책상과 의자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호기심 많고 개구쟁이인 저와 친구들이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리 없었겠죠.

우리는 의자 하나, 책상 하나 밟으며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와르르 쿵"

의자와 책상 더미가 우리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졌고, 
저는 그대로 땅바닥에 뒤통수부터 떨어져
순간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 그 와중에도 아픈 것보다 더 머릿속에 맴도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내 신발.. 내 신발"

뒤로 넘어지면서 운동화 한 짝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아껴 신으렴, 아껴 신으렴.."
어린 마음에 아픈 것도 잊을 정도로 
혼이 날까 봐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오신 어머니는
피투성이가 된 제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셨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안고 병원으로 있는 힘을 다해 뛰어가셨습니다.

엄마 품에 안겨 잠시 정신을 잃었던 제가 
병원에서 깨어나 어머니를 찾자
어머니께서는 저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그 와중에도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내 신발은?"
"걱정하지 마! 엄마가 찾아 놓았어."

어머니는 제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한다며 몇 번을 말씀하셨습니다.

제 뒷머리에는 아직도 그때 생긴 흉터 자국이 있습니다.
이 흉터는 어머니에게 진 사랑의 빚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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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한없이 크게만 느껴졌던 어머니.
그 시절 어머니만큼 무서운 존재가 또 있었을까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크게 혼낸 것도 몇 번 안 되고,
또 정말 화가 끝까지 나서 혼낸 적도 몇 번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어머니의 존재감이 너무 커,
그 사랑의 크기만큼 어머니가 
가장 엄한 존재가 된 것뿐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어깨가 좁아지고
등이 굽어 키가 작아져 어릴 적처럼 한없이 커 보이지 않는다고요?
그건 자식이 컸기 때문이란 걸 잊지 마세요.
어머니는 언제나 변함없이 처음부터 그대로였고,
변한 건 자식일 뿐입니다.


# 오늘의 명언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
- 벤저민 프랭클린 -


출처 : 따뜻한 하루

2015년 7월 14일 화요일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노르웨이 우토야 섬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총기 난사 사건.
사건 당시 난사 현장에 있던 십 대 소녀가
엄마와 긴박하게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내용입니다.

딸의 전화를 받은 엄마.
우토야 섬에 총기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전해 들은 엄마는
딸에게 괜찮다는 신호로 5분에 한 번씩
문자메시지를 보내라고 합니다.

딸은 엄마 말대로 문자메시지를 통해 현장 상황을 전했고,
엄마는 경찰의 출동과 도착 여부를 전하며 차분히 딸을 안심시킵니다.
또, 범인이 경찰복장을 하고 있으니
섣불리 나서지 말고 조심하라고도 알려줍니다.
소녀는 엄마 말을 듣고 바위 뒤에 침착하게 숨어 있다가
무사히 구출됩니다.

모녀가 2시간 가까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속에는

'엄마에게 가끔 못되게 굴었지만, 엄마를 사랑해'
'알고 있단다. 내 딸. 나도 널 정말 사랑해'

라는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도 담겨 있었습니다.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각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연결하면 'FAMILY'가 됩니다.

가족은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인 나를 사랑하는 것.

딸을 향한 애틋한 사랑이 위급한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여
딸이 무사히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게 된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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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부모님만 특히 자식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방법만 다를 뿐,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큽니다.

물론 다른 집보다 경제적으로는 조금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뒷바라지해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가족',
만든 건 부모님이지만, 지키고 사랑으로 채워 나가야 하는 것은
'가족' 모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바로 해보세요.. 멀리 계신다면 전화로요..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출처 : 따뜻한 하루

2015년 5월 11일 월요일

우리 엄마 본동댁








나는 개구쟁이 두 아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서로를 아끼며 단란하게 살아가고 있는 가정주부이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다정한 아빠이자,
나에게도 늘 웃음을 주는 유머감각이 있는 남편이다.
아이들은 또래 보다 제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할 줄 알고
예의가 바른 편이라 걱정이 없다.
우리 집은 그야말로 행복이 가득한 집이다.

그런데 어느 날,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다.
시골에 홀로 계신 엄마가 3일을 굶어 쓰러진 채로 발견된 것이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사일에 집안일까지 정정하게 하시던 엄마인데.
무슨 까닭인지 몰라 시골집으로 가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억척 엄마. 엄마는 그랬다.
아들 넷, 딸 넷을 혼자 몸으로 키우느라 밤낮없이 일만 했다.
일찍 남편을 떠나 보낸 후,
시골에서 품을 팔아가며 8남매를 올곧게 키워내는 것,
그것이 엄마 인생의 목표였다.
쉼 없는 노동.
그 대가로 엄마는 농사지을 땅을 소유했고
자식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가졌으며 8남매 모두 잘 성장했다.

이제 인생의 즐거움을 누려야 할 때, 엄마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그토록 강인한 정신력의 엄마에게 치매가 왔다.
자식들이 모두 떠나가고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셨던 걸까?
나는 엄마를 그냥 둘 수 없어 집으로 모시고 왔다.
엄마에게는 일곱 번째 자식이지만 그냥 내가 모시기로 했다.
너무 늦게 엄마의 고통을 알게 되어 죄스럽기만 하다.
다행히 남편은 아픈 장모님을 집으로 모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오히려 엄마를 나보다 더 살갑게 대하며 가슴으로 껴안는다.
역시 멋진 내 남편이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우리 집의 아침 풍경은 언제나 비슷하다.
아이들을 챙기고 남편도 살뜰히 챙겨 출근시키고 나면
엄마가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되어버려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엄마.
40년 전 엄마가 아기인 나에게 해준 것처럼 아기가 된 엄마를 돌본다.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화장실에 시간 맞춰 데리고 가고.
아직은 엄마가 내 이름을 불러주니 다행이다.
언젠가는 그마저도 기억에서 지워버릴 것 같아 겁이 난다.

"승애야, 지금 나가야 하는디."
"엄마, 어디 가고 싶은데?"
"송광굴에 가서 일해야 혀."
"무슨 일... 이젠 안 하셔도 돼."
"콩도 심고 밭도 갈고."

엄마에겐 땅(송광굴)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 땅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모든 것이 나왔다.
그곳에서 거둔 것들로 8남매를 먹이고 키워냈다.
땅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러니 매일 돌보러 나가고 일해야 하는데, 그 땅이 이곳엔 없다.
엄마는 창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를 보며 안절부절못한다.
그 땅에 건물이 들어서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올해 일흔일곱 살 김종례. 엄마는 '본동댁'이라고 불린다.
한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할 일이 없다는 건 평생을 노동으로 살아오신 분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그래서 평일 낮 동안 치매노인보호센터로 보내드린다.
엄마에게는 거짓말을 했다.

"엄마, 그곳에 가서 일하면 하루 7천원에서 만 원 정도 버니까,
돈 벌러 가시는 거야. 알았지?"
"그럼, 일해야지. 일해야 돈을 벌지."

당뇨, 고혈압에 관절염까지 겹쳐 한 움큼씩 약을 드셔야 하는
불편한 몸으로 엄마는 기꺼이 일하러 가신다.
엄마는 그 시간이 즐겁다.

엄마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우산댁'이라 한다.
'우산댁'은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에게는 외할머니다.
외할머니가 살아 돌아오셨다고 믿는 엄마.
엄마는 거울을 보며 외할머니 끼니를 챙겨드렸냐고 묻는다.
물론 나도 식사를 잘 챙겨드렸다고 응수한다.
엄마에게 가장 그리운 사람은 외할머니였을까?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
엄마도 언제나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 하셨을 테지.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처음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영원히 건강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내 기억 속에서 엄마는 강하고 엄한 분이었다.
그런 엄마였는데, 한순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장모님 옆에 나란히 누워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리는 남편과
사위 앞에서 수줍은 듯 입을 가리고 웃는 엄마,
그리고 자신들보다 할머니에게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두 아들에게서 힘을 얻었다.
엄마는 불청객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었고
그 변함없는 사실은 우리 가족을 더 끈끈하게 이어주었다.
 
 

 


명절이 되어 고향집으로 가는 길, 쉬지 않고 5시간을 내리 달린다.
벌교 집에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이번이 여기에서 보내는 마지막 명절이다.
엄마는 본동으로 돌아와 즐거운지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부엌에선 며느리들과 딸들이 설음식 준비로 부산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명절이면 엄마가 주방의 수장으로
호령하며 음식 준비를 도맡았는데,
이제는 멀찍이 떨어져 물끄러미 부엌을 바라보신다.
아내로 엄마로 새벽부터 밤까지 노동으로 살아온 인생.
그 고단한 인생의 끝에서 치매를 만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예전부터 남편은 명절이 끝나고 돌아갈 때면 가장 늦게 올라가자 했다.
많은 가족이 붐비다가 홀로 남으실 장모님 생각에 발길이 안 떨어진다 했다.
손수 농사지은 먹거리를 잔뜩 싸주시며 잘 지내라는 말을 연거푸 하시는
장모님의 외로운 웃음을 보기가 힘들다 했다.
혼자라는 사실 앞에서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오늘도 엄마는 나갈 문을 찾아 온 집 안을 빙빙 돈다.
콩을 심어야 할 때라고 밭에 나가봐야 한다는 엄마.
이어지는 실랑이에 엄마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릴 방법을 궁리하다가
슈퍼에 가서 흰 콩과 검은 콩을 사왔다.
한데 섞어 엄마 앞에 내려놓는다.
엄마는 흰 콩과 검은 콩을 따로 담느라 손을 부지런히 놀린다.
할 일이 생겨 집중하는 엄마.
색깔 별로 잘 고르시다가도 흰 콩이 검은 콩 그릇으로 가기도 하고
검은 콩이 흰 콩 그릇으로 가기도 하고, 끝이 없다.
콩 고르기는 엄마의 큰 일감이 되었다.



 

 올 봄 초등학교에 입학한 작은 아들은 할머니가 오신 후부터 예민해졌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할머니 존재때문에 힘든가 보다.
그래도 아이들은 할머니가 오신 후에 달라진 삶을
오히려 어른보다 잘 받아들였다.
그런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좀 더 신경 쓰지 못해 속상하지만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잘 성장하리라 믿는다.

오늘은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처음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왔을 때는 30점 중 16점이었는데,
지금은 7점으로 더 안 좋아지셨다.
첫 검사에서 이미 중증이었지만 정성으로 보살펴드리면
나아질 거라 믿었는데 현실은 내 편이 아니다.
뇌 부피가 더 작아졌고 언제 시설로 보내드려야 할지
이제는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가슴에 와서 박힌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부족한 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으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엄마와의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까?
엄마는 아직 딸을 잊지 않았다.
언젠가는 내 이름과 얼굴을 잊을 때가 올지도 모른다.
존재가 지워지는 날, 그날이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길 수 없는 싸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하지만 오래도록 할 수만 있다면 그 싸움을 계속 하고 싶다.

내 곁에 오시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엄마와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
엄마는 여전히 우리 엄마고 나는 그녀의 딸이다.
엄마와 나의 시간은 오늘도 흐른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엄마 옆에 내가 있고 내 옆에 엄마가 있기에,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기에,
우리 집은 행복이 가득한 집이다.

- MBC 휴먼다큐 사랑 10년의 기적 '지금, 사랑' 중에서 -

출처 : 따뜻한 하루 

2015년 5월 4일 월요일

엄마, 뭘 그렇게 찾아?







요 며칠 주방에만 들어가면 어머니는
뭔가를 찾아 헤매느라 분주해지십니다.

"분명 여기에 뒀는데 이상하네."

어머니가 물건이 없어지기 시작한다고 말씀한지 꽤 됐지만,
가족들은 어머니의 건망증으로 치부해버리고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없어졌다고 말씀하신 물건도 쌀, 라면, 조미료 종류이고
그 양도 적어서 사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으로 덮곤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주방에서 어머니의 한 숨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오늘은 좀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싶어 주방으로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빈 찬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순간, 자신이 어제 사서 넣어놓은
통조림 캔 몇 개를 찾아봤더니 역시나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집을 비우는
매주 수요일에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누군가가 아무도 없는 우리 집에 들어와
물건을 가져간다는 건,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사소한 부재료만 가져가지만,
앞으로 더 큰 걸 훔쳐갈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열쇠를 바꾸고 경찰서에 신고하자고 흥분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거지 도둑이야?

왜 맨날 남에 집에 들어와서 이런 거나 훔쳐 가냐고,
그게 더 기분이 나빠!"
 





그런데 어머니는 흥분한 절 말리며
오히려 좀 도둑이 들어오는 날,
기름진 음식에 잘 보이는 곳에 돈까지 놓아두고 나가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선행이 못마땅한 저는
도둑을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머니가 문화센터에 가시는 수요일.
도서관에 가겠다고 나선 후,
어머니가 나가신 걸 확인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분 후,
'달그닥' 열쇠를 따는 소리가 났습니다.
'삐그덕' 현관문이 열립니다.
전 숨죽인 채 야구 방망이 하나를 들고
주방 입구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만 비명을 지를 뻔 했습니다.

"헉."

도둑의 모습을 본 저는 그 자리에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름 아닌 시집간 누나였기 때문입니다.

"누...나!.."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힘들게 결혼하며
부모님의 가슴에 큰 대못 하나 박고 떠났던 누나가.
만삭의 몸으로 얼굴은 반쪽이 되어 친정을 몰래 찾아왔던 것입니다.

돌아누울 곳도 없는 작은 방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행색이며 그 곱던 얼굴은 초라하기 짝이 없고..
거지도둑이냐며 경찰에 신고해서 당장 붙잡자는 말에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어머니의 행동이
이제서야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출처: TV동화 행복한 세상 -


칠순이 된 자식을 아흔이 된 노모는
외출할 때마다 차조심 하라고 몇 번을 당부합니다.

언제나 자식은 부모에게 보호해줘야 하고,
아껴줘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그런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기 일쑤입니다.
관심이 부담스럽고, 더 해주지 못하는 부모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감히 당부합니다.
부모의 마음 전부를 헤아려주진 못해도,
적어도 '밥 먹었냐'는 말에 퉁명스러운 대답 말고
'응, 엄마도 아빠도 식사 하셨어요?'라는 다정한 대답 한 번 해보시라는..

그 무엇보다 기쁜 한 마디가 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자녀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행복을 느낀다.
자기 자식이 좋아하는 모습은 어머니의 기쁨이기도 하다.
- 플라톤 -

출처 : 따뜻한 하루